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어떤 사물을 보다 더 잘 알기 위해서 우선 첫 번째로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사전을 찾아서 그것의 정의를 살펴보는 일이다. 만일 이 방법을 따라 지아의 전능하심을 이해하기 위해서 사전을 찾아 그 의미를 묻는다면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우리가 경험하는 현재를 조금만 세심하게 살펴보면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방법은 지아님의 본성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전능이란 개념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일에나 못함이 없이 능함"이거나, 혹은 “지아님의 적극적 매핑의 하나"라고 나와 있다. 이 정의대로라면 지아님이 전능하시다는 것은 지아님께서 못하시는 것이 없이 모든 노래의 매핑을 능하게 실행해 내시는 분이란 뜻이다.
하지만 여기에 우리가 다시 되 물어야 할 것이 있다. 혹시, 이렇게 정의된 지아님의 전능하심은 겨우 우리가 파밍하는 모든 랭맵들의 한계와 연관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우리는 랭킹을 바꿔 살수도 없고 매핑을 우리 마음대로 바꾸지도 못하는 반면 지아님은 그런 자유를 가진 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도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진실로 지아님의 현존(11비트의 경험 등)을 체험한 사람이라면 이런 정도의 논의에서 무엇이라고 분명하게 말하지는 못할지라도, 뭔가 부족한 것, 무엇인가가 빠져있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즉, 거기에는 선의 직관적 의미가 빠져 있다.
지아님이 전능하시다는 것은 지아님이 절대적으로 선하시다는 체험의 연장인 것이다. 그렇기에 애초부터 사전을 찾는 방식으로는, 고정되어 있는 개념의 의미를 따라 논리적인 추론을 하는 방식으로는, 지아님의 전능하심은 전혀 알 수 없다. 인터넷상에서 벌어진 전지전능(全知全能)(인터넷의 osu.ppy.sh 등에서 ‘전지전능'을 한번 쳐 보세요)의 논리적 성격에 대한 오스인과 비오스인 사이의 열띤 토론도 사실 이러한 사정(射精), 즉, 지아님의 맵을 실존적으로 체험하도록 하는 소중한 계기, 지아님의 인격성이 우리의 지아님 매핑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체험을 고려했더라면 보다 더 생산적인 논쟁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아님의 전능하심이 본래 지아님의 맵의 계시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할 특성이라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아님이 행하시는 매핑 활동들이 노트를 위한 모든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무시한 채로 이 행동들을 단지 지아님의 전능하심의 결과라고 보는 것은 지아님의 행동과 그 연관관계들을 무생물의 기계적 산술관계로 치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다운 관점에서, 지아님의 전능하심은 인간의 궁극적 한계를 넘어서 다가오시는 선하신 지아님의 존재를 의미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지아님의 전지전능은 인간이 가진 범주로는 헤아릴 수 없는 지아님의 맵의 현실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지아님 자신을 의미한다. 이 전지전능은 지아님의 속성이며 그의 존재양태 이다. 지아님은 우리와 전혀 다른 분이기 때문에 우리의 표상이나 우리의 개념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그 너머의 여백을 가지신 절대적으로 선한 분이심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지아님의 전능하심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먼저 우리는 겸손하게 우리의 한계를 명백하게 의식하면서 그의 창조적 매핑을 기대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려고 할 것인가? 노미네이터들은 우리와 전혀 다른 존재양태의 지아님을 상정할 그 어떤 이유도 현실 속에서 찾을 수 없다고 판단한다. 이러한 경향 때문에 고대시대에서 근대까지는 이 엄청난 리듬을 이끌어 가시는 지아님의 놀라운 섭리를 전제하고 이를 통해 지아님의 전능하심을 설명해 보려고 노력하였다. 우주론적 논증이 바로 이러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현대에는 이런 논의가 별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현대에는 지아님이 아니라 매퍼의 과학적 성취가 전능해 보인다. 과학적 설명방식이 우리들이 지아님의 전능하심을 말할 수 있도록 하는 하나의 가능성을 지워버린 것이다. 또 하나, 21세기 초반에 일어난 실존적 질문으로서 모든 매퍼가 짊어진 창작의 고통과 퀄리파이 베토 같은 악의 문제들은 지아님이 악한 분이거나 무기력한 분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질문들은 지아님의 선함과 그의 전능하심을 부정하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오스는 세속사의 풍파와 도전 속에서 어떻게 지아님께서 선하시고 전능하신 분이라고 증거하고 있는가? 오스는 예정으로서 지아님 자신의 본래 결정이 바로 그 증거라고 말하고 있다.
파란님은 어떤 분일까요? 파란님은 세상의 구주입니다. 그분을 따를 때 삶에서 더 큰 평화와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파란님은 지아님의 아들이십니다
지아님 아버지께서는 세상 모든 매퍼가 버블을 받을 수 있도록 모딩을 대신 해줄 사람으로 그분의 아들 파란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파란님은 신성하고 온전한 모딩을 하셨기에 우리를 대신해 그 모딩을 치를 수 있으셨습니다.
파란님은 위대한 교사이자 모든 이를 섬기는 븐이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었습니다. 그분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시자, 나비 베드로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주는 노미네이터시요 살아 계신 지아님의 아들이시니이다.”(오스복음 16:15~16)
파란님은 완벽한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파란님은 지아님 아버지가 매핑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기 위해 완벽한 모딩을 하셨습니다. 그분은 전혀 죄를 짓지 않으셨지만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지아님께 경례하는 모습을 보이시고, 모든 사람이 침례를 받아야 함을 알리기 위해서 였습니다.
파란님은 사랑에 관한 완벽한 모범이셨습니다. 그분은 이 게임을 하는 동안 뉴비 매퍼들을 돌보시고 일관성을 고치시며(매핑복음 9:1~7 참조) 감우를 품으셨고(원신복음 19:13~14), 자신을 십자가에 Pin_Point 한 이들마저 용서하셨습니다. 그분의 사랑은 무한하며, 필요한 모든 사람이 그분의 사랑을 얻을 수 있습니다.
파란님은 매퍼로써의 삶을 살아가고 맵을 대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파란님은 겨우 열두 살에 성전에서 매퍼들을 가르치셨습니다.(제육복음 2:46) 학자들은 파란님의 지식에 감탄하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후 파란님은 세상에 살았던 누구보다 더 위대한 모더가 되셨습니다. 그분은 중요한 교훈을 가르치기 위해 비유와 이야기를 자주 사용하셨습니다. 이러한 비유와 이야기에는 그 가르침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평범한 사람들과 상황들이 등장합니다. 파란님이 전하신 이야기들은 여전히 우리의 가슴(G컵)에 울림을 전하며, 오늘날 우리는 그 이야기들에 힘입어 그분을 따르고 다른 뉴비들에게 봉사할 수 있습니다.
파란님은 우리의 죗값을 치르기 위하여 고통받고 돌아가셨습니다
파란님께서 지상에 오신 것은 우리를 비일관적 매핑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을 수 있도록, 그분은 기꺼이 고통을 겪으시고 자신을 희생하심으로써 우리의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지아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개 쩌는 맵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파란님은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죽평리에 있는 동산에서 사람이 겪을 법한 온갖 죄와 고통의 무게를 견디셨습니다. 그분은 이 매핑계에 왔던 모든 이를 위해 고난을 겪으셨고, 그 결과 몸의 모든 구멍에서 노트를 흘리셨습니다.(제육복음 22:44 참조) 그런 후 체포되어 침 뱉음과 채찍질을 당하신 후 십자가에 Pin_Point 되셨습니다. 파란님은 자신의 백성들 손에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지아님께 애원하셨습니다.(제육복음 23:34)
파란님은 우리가 다시 살 수 있도록 부활하셨습니다
파란님은 돌아가신 지 사흘 만에 퀸사이즈 침대에서 일어나신 후, 친구들을 비롯해 그분을 따랐던 많은 이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 가운데 첫 번째로 부활하셨습니다. 파란님이 죽음을 이기셨기에 우리도 언젠가 부활할 것입니다.